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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 드 모파상, 어떤 정염, 펭귄클래식코리아, 2018

 

기 드 모파상, 어떤 정염, 펭귄클래식코리아, 2018.

 

집어든 이유/

영풍문고에 들러 문학 전집을 진열한 서가를 보는데 익숙한 펭귄 출판사의 펭귄 로고가 보였다.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출판사가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예전에 ‘제인 에어’와 ‘자기만의 방’을 펭귄 번역본으로 읽은 적이 있어서 펭귄에서 책을 냈다 하면 믿음이 간다. 나중에 안 사실인데, 사랑을 주제로 한 모파상의 단편을 묶어낸 ‘어떤 정염’은 펭귄에서 특별히 기획한 <레드 에디션> 중 한 권이라고 한다. 펭귄에서 출간한 다른 시리즈처럼 이 책도 펭귄 출판사에서 냈음을 강조한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 포맷을 가지고 있다. 기획 의도가 인상 깊은 시리즈라 나중에 모으게 될 지도 모를 전집이라고 여겨서 구매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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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성에 대해/

성과 사랑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과감하게 파고 들었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‘문제작’으로 취급되던 여섯 편의 고전을 펭귄클래식코리아가 <레드 에디션>이라는 기획 아래 새롭게 펼쳐내 재조명 했다고 한다. ‘어떤 정염’은 주로 치기어린 젊은 날 실수처럼 혹은 운명처럼 사랑을 만나고 헤어졌던 스무 편의 이야기를 묶어낸 단편집이다. 첫번째로 실린 단편 ‘옛 시절’은 이야기의 포문을 열기에 꼭 맞는 단편으로, 한 노부인이 남자도 여자도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지난 날을 추억하며 손녀에게 사랑 앞에서는 솔직하게 굴기를 바란다는 한탄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. 이 노부인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면 열 아홉 편의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줄지어 나오는 구성인 셈인데,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영리한 배치로 보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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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으로도 쓰인 ‘어떤 정염’은 네 번째로 수록된 작품이다.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‘어떤 아들’이었지만, 독자 눈에 확 띄는 제목으로는 역시 ‘어떤 정염’이 으뜸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. 게다가 단편집에 등장하는 한 무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동화 같이 알뜰살뜰 꾸려온 사랑이 아니라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충동적인 사랑을 경험한 이들이어서 ‘어떤 정염’은 이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묶어 내기에 가장 적절한 말이다. <레드 에디션>의 기획 의도에 어울리는 제목이기도 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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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용에 대해/

수록된 단편 중에 ‘어떤 아들’이 가장 좋았다. 신기하게도 작가가 주인공에게 빙의되어 의원의 그 불쌍한 아들을 가엾게 여기며 어쩔 줄을 모르는 느낌이 들었다. 모파상은 몸이 아픈 아이, 따돌림 당하는 여자, 부모를 모른 채 자란 아들처럼 높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‘작은 인간’들을 절절하게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보다. 단편집을 읽다 보면 마치 작가가 벽 뒤에 숨어 이들을 지켜보면서 남몰래 마음 아파하는 듯 하다. 물론 ‘어떤 아들’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이야기 내내 쌓아온 절절한 감정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대목을 넣음으로써 함께 마음 아파하던 독자를 퍼뜩 일깨워 현실로 다시 내몬다는 점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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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듦새에 대해/

사실 이 책에 특징적인 디자인이 쓰이지는 않았다. 다만 책의 어디를 보아도 ‘펭귄에서 냈구나’하고 알 만한 디자인을 채택했다. 인터넷 서점에서 살펴보니 <레드 에디션>은 주로 화려한 색감을 그라데이션을 주어 표지에 전체적으로 입힌 디자인이 많다. 딱히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지 않은 매우 무난한 디자인이다. 펭귄 출판사 책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모으는 사람들도 있는데, <레드 에디션>은 가지수가 모두 더해 여섯 권 밖에 되지 않아 애호가들도 모을 만한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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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이 아주 가볍다. 가방에 넣어서 출퇴근 길이나 통학할 때 읽어도 괜찮을 듯 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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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가지 아쉬운 점은 표지 겉면이 자꾸 까진다는 거다. 표지를 조금만 더 튼튼하게 만들었으면 좋았지 싶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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띠지를 만들어본다면/

"상처처럼 남은 지날 날의 정염에 대하여"